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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차 ★☆/+ 기타

[페이트/창x궁] Hedonics - La Vérité Dans Le Faux

by 필묘Q 2020. 12. 15.

※ Fate/Ataraxia 기반 글입니다
※ 중간에 꾸금글은 포스타입에 발행되어 있습니다.
※ 게임 내용 약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꽤 오래 전 글입니다. 와하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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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금 전에 소년이 그의 손에 남기고 간 [그것]을 사내는 물끄러미 내려다 보았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너무 리얼해서 되려 현실 같지가 않았다. 얼마나 그렇게 바라보고 있었을까. 등 뒤로 느껴진 낯익은 기척에 푸른 머리의 남자는 돌아보지도 않고 쓴 웃음을 지었다.

  “무슨 일이냐? 아처.”
  “그저 지나가던 길이었다.”

 퉁명스러운 듯 무뚝뚝하게. 그러나 실낱 같은 흔들림을 과거형의 문장으로 회답하며 붉은 눈의 영령을 살피는 것이 걱정이란 단어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한 기색이 다른 누구도 아닌 등 뒤에 선 궁병으로부터 나오고 있다는 것에 랜서는 의아함을 느끼며 돌아보았다가 마주친 회색눈에 선선히 상대의 감정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한 점 흔들림 없이 곧게 쏘아보는 진심 어린 눈은 틀림없는 염려. 단, 그것을 본인이 깨닫고 있는지는 별도로 하자.

  “…….”
  “…….”

 묘한 침묵이 자리를 잡는다. 해는 아까보다 더 지평선에 가까워져 있었다.
 오로지 4일간만 존재하는 공간이어도 꾸준히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 어쩐지 괴상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늘 마주치기만 하면 쌈박질 하는- 두 영령이 서로를 솔직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도.

  “처음에는.”

 방파제를 때리는 파도 소리만이 전부였던 두 남자 사이에 조용하니 기품서린 목소리가 더해졌다. 그리 크지는 않지만 서번트 아처의 뇌리에 파고 들기에는 충분한 목소리가.

  “이 괴상망측한 세계가 재미있었지. 우리 같은 서번트가 평화로이 세계를 어슬렁거릴 수 있는 기회가 그리 쉽게 오는 건 아니잖아? [세계]가 준비해 둔 좌(座)는 심심하다거나 지루하다는 걸 느낄 수 있는 곳이 아니지만 말야.”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동의를 구하는 양, 랜서는 아처를 향해 그 붉은 눈을 가늘게 웃어 보였다. 궁병은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해 침묵을 고수했다. 그런 그의 행동을 창병은 타박하지 않고 대신 고개를 돌렸다.

  “마음에 들었지.”

 눈 앞에 펼쳐져 있는, 언제나 사내가 낚싯대를 드리우곤 하는 바다는 끝없이 먼 지평으로부터 진실과 거짓을 가리지 않고 그저 그곳에서 출렁이고 있다. 고민하는 자를 비웃기라도 하는 양.

  “좀 더 여기 있어도 좋겠다 생각했었지만..”
  “…….”
  “그 녀석의 사체 위에 핀 꿈이라면 필요 없어.”

 체념보다는 밝고 수긍보다는 어두운 감정이 랜서로부터 피어 오르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안타까운 마음에 생각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갑자기 등에 닿는 온기에 아일랜드 옛 영령의 몸이 움찔했다가 이내 어깨에 힘이 빠지며 늘어뜨려졌다. 위조된 세계에서 위조하는 자로부터 위로를 받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하는 가운데 궁병의 목소리가 등을 통해 창병의 몸 전체에 울린다.

  “그래서 이전 마스터를 죽이겠다는 건가. 네 놈 가는 길은 영령이 되어서도 가시밭이군 그래.”
  “밋밋한 길은 성미에 안 맞는 모양이야. 하하하하.”

 돌아온 랜서의 명쾌한 대답. 하얀 머리 사내는 진심으로 감탄하고 말았다. 좀 전까지의 흐릿한 모습은 지금 그가 뱉은 말들과 함께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등을 마주하고 앉은 지금, 그의 얼굴을 볼 수는 없었으나 틀림없이 –특유의 장난기 많은- 미소를 띄고 있으리라.
 신화시대를 살던, 짐승보다 더욱 본능에 충실할 듯한 이 사내는 순식간에 흔들림을 접고 그가 가야 할 길을 받아들였다. 주저함이라던가 망설임이란 것은 랜서에게 있어 단지 지나가는 미풍에 불과한 모양이다.

 아처는 일종의 경의를 가지며 여느 때와 달리 솔직하게 감정을 입에 담았다.

  “네 녀석을 보고 있노라면 언제나 몸부림만 치는 내가 바보 같다.”

 꾸밈없는 말에 멈칫하는 것도 일순, 켈켈거리며 창병이 말한다.

  “끈질기게 저항하는 너를 보고 있으면 어쩌면 다른 길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씁쓸해지니까 피차일반이야.”

 서쪽 하늘과 바다를 붉게 물들이며 해가 넘어간다.
 그리고 운명의 순간이 다가온다.

 

 

 

 

 

 

 애송이와의 약속대로 랜서는 그 자리에 나타났다. 눈 앞에 그녀가 서 있다. 보라색 머리카락과 첫눈에 들어오는 눈 밑의 작은 점. 그리고 반듯한 정장. 무엇 하나 처음 만났을 때와 다를 바가 없다. 그저 다른 것이라면..

 그녀의 옆에 서 있는 것이 자신이 아니라는 것.

  “…….”

 그녀가 그녀의 서번트였던 자를 기억하지 못함을 어리숙하면서도 성실한 두 눈에서 읽는다.

  ‘이번에야말로..’

 붉은 창을 쥔 손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 비틀린 음을 낸다.
 그리고 이전에 마스터를 구하지 못했던 서번트는 포효한다.

 

 

 

 

 

 

 결투가 끝난 교회는 기분 나쁠 정도의 정적에 휩싸여 있었다. 간간히 스쳐 지나가는 바람의 방문으로 나뭇잎들이 부딪혀 샤락샤라락 소리를 내는 것 외에 살아있는 것의 기척은 없었다.
 돌연 교회에서 500m 가량 떨어진 숲이 수런수런 흔들거린다. 일렁이는 대기 가운데 여태껏 존재하지 않았던 [무엇]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전 까지만 해도 교회 앞뜰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던 자이다. 푸른 머리카락을 언제나 한 가닥으로 붙들어 매어 주고 있던 장식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려 전사의 어깨 위로 머리카락이 어지러이 흐트러졌고 갑주는 상처로부터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붉은 피로 인해 본연의 색을 잃었다.

 투둑..투두둑..

 상처를 손바닥으로 감싸보지만 그의 커다란 손으로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손가락 틈새로부터 붉은 피가 대지 위로 떨어져 내린다. 살아남는 것에 일가견이 있는 자신이긴 하지만 즉사에 가까운 부상을 입고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것에는 스스로가 더 놀랄 지경이었다. 나는 무슨 미련이 남아서 포기하지 못하고 머물려 하는 걸까. 꼬맹이의 부탁은 들어주었다. 그러나 그걸로는 아직 부족할 것이다. 랜서는 자신의 전투가 꼬맹이가 진실에 한 발짝 더 다가가게 하는 것에 불과한 것임을 어렴풋이 짐작했다. 그렇기에 4일간의 무한 루프는 앞으로도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즉, 랜서가 지금 사라지더라도 다시 첫날을 맞이하게 될 뿐인 이야기. 그런데 왜 나는..

  “커흑-!!”

 내장에서부터 피가 역류해 터져 나온다. 과다한 출혈.. 급격한 마력의 소모로 사내의 무릎이 끝내 꺾이고 말았다. 땅바닥에 쓰러지기 직전, 아슬아슬한 타이밍으로 누군가가 그를 붙들었다. 강인하게 붙드는 이 손을 랜서는 잘 알고 있다. 아일랜드 옛 영령이 키들 웃었다.

  “어지간히도 사람 좋은 녀석이다.”

 창병의 말에 궁병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의를 제기한다.

  “그저 궁금했을 뿐이다.”
  “뭐가.”
  “어째서 네가 순순히 사라지지 않았는지.”

 조금 전 까지 자신이 품고 있던 질문이 붉은 영령에 의해 말이라는 실체를 띄고 부딪혀 와 푸른 영령은 굳어버리고 말았다. 창병이 그러거나 말거나 궁병은 말을 잇는다.

  “설마 거짓된 이 세계에서의 네 행동이 과연 의미가 있을지 망설인 건가?”

 마음 깊은 곳을 방어할 도리도 없이 난도질 당하는 것에 참지 못하고 아처의 손을 뿌리치고자 했으나 투박한 손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하기야 빈사상태나 다름없는 랜서는 그의 몸을 가누는 것도 겨우였으니 멀쩡한 궁병을 밀쳐내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였었다. 그럼에도 푸른 영령은 포기하지 않았다.

  “비켜라. 아ㅊ..흡!!”

 사내의 말은 끝을 내지 못하고 상대의 입 속으로 잡아 먹히고 말았다.
 타오르는 불처럼 뜨거운 아처의 혀가 랜서의 입 안을 휘저었다. 이렇게 뜨거운데 어째서 자신은 화상을 입지 않는 걸까 하는 빗나간 질문을 잠시 떠올려 보았다가 이성의 너머에서 밀려오는 쾌감에 생각하기를 멈추었다. 한번 사고를 정지시키자 멀고 먼 신화시대의 영령은 본연의 모습으로 회귀한다. 광폭하고 거침없는 전사로.

 목이 말랐다.
 배가 고팠다.
 상처 입은 몸은 회복을 위해 먹이를 갈구했다.
 그리고 먹이는 그의 손 안에 있었다.

  “-!!!!”

 푸른 머리 창병이 궁병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궁병은 숨을 들이켰다. 물어 뜯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난폭한 혀의 놀림을 온 몸으로 감지하며 붉은 영령은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정확히 이해했다.
 그러나 저항하지 않는다. 아니, 저항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 바른 말이다.
 고집스런 자존심도, 배배 꼬인 마음도 잠시만 아주 잠시만 접어두고 팠다.
 설명하기 힘든 감정과 자투리 남은 이성이 격렬하게 주도권 다툼을 하는 사이, 창병이 고개를 들었다.

  “아처.”

 그르렁거리는 낮은 호명이 궁병의 몸을 달아오르게 하며 감각의 문이 빼꼼 열렸다. 시간이 정지해버린 듯이 동시에 움직임을 멈춘 두 사내.

  “…….”

 육식동물의 그것을 닮은 붉은 눈과.

  “…….”

 세상의 끝까지라도 비춰낼 듯 투명한 회색눈이 맞부딪힌다.
 그들의 시간은 영원히 그대로 굳어있을 것만 같았다.

 투둑..툭..

 랜서의 상처로부터 붉은 피가 아처의 뺨으로 방울 져 떨어져 내릴 때까지.

  “……큭….”

 조금 전에 사투를 끝낸 전사의 체취와 숨 막히게 피어 오르는 녹슨 쇠붙이의 그것을 닮은 피 냄새가 아처로 하여금 최후의 한 발을 내딛게 하였다.
 신음에 가까운 작은 포효와 함께 이번엔 아처가 랜서의 상처에 얼굴을 묻었다. 고통과 비례하는 쾌락으로 오래 된 영령의 피 묻은 손이 하이얀 머리카락을 끌어안는다. 눈처럼 희기만 하던 사내의 머리에 붉은 꽃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이 세상 어느 것보다도 고혹적인 광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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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차례 폭풍이 지나간 뒤, 다시금 고요한 정적을 찾은 숲 속에서 아처는 랜서의 상처를 흘끔흘끔 살폈다. 아직도 꽤 깊어 보이기는 하지만 일단 고비는 넘긴 듯 한 순간에 사라질 것 같은 위태로움은 없었다.

  “새삼스럽지만.. 왜냐.”

 한숨처럼 내뱉는 랜서의 질문은 타당했다. 어차피 곧 자정이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이 세계는 리셋 된다. 자각해 버린 자를 제외하고서. 남은 자들은 그저 잔향만을 기억하나 그나마도 소수에 불과하다. 이런 관점에서 아처의 행동은 어느 의미 쓸데없는 것이었다.

  “네 놈이 답지 않은 짓을 하니까.”

 퉁명스럽게 시작한 대꾸에 붉은 눈의 영령이 슬쩍 미간을 찌푸렸다. 어이없을 정도로 간단히 깔려준 네 놈 행동은 다운 거냐?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것을 현명하게 도로 쑤셔 넣는다.

  “망설이는 건 너답지 않아. 넌 불도저처럼 돌진하는 것밖에 재주가 없지 않던가.”

 랜서가 생각하기로 5차 성배전쟁에 불려 나온 7인의 서번트들 가운데 가장 성격 나쁠 거라 확신하는 이 영령이 자신에게 싸움을 걸고 있는 건가 싶어 더욱 미간을 좁혔다.

  “네 놈은 나랑 달리 진짜 영령이다. 진짜는 설령 가짜들 틈에 있더라도 눈에 띄는 법이지. 섣불리 고민 따위 하면서 빛을 흐리지 마라. 곤란하니까.”
  “????”

 시비를 거는 게 아니라 선문답이라는 신종 고문을 실시하고 있는 것인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노라니 어째서인지 조금 상기된 표정으로 아처가 헛기침을 한다.

  “크흠-. 어쨌든.. 이 세계가 거짓이고 여기에 존재하는 너 자체가 거짓이라 할지라도 네 마음, 기분은 진짜일 거라는 말이다.”

 그제야 아처의 의도를 눈치 챈 랜서가 씨익 웃었다. 반대로 아처의 표정은 더더욱 어색하게 굳어간다. 불쑥 장난기가 발동한 아일랜드 창기사는 과장되게 코웃음을 치며 비꼬았다.

  “무슨 근거로 그런 소릴 하는 건지. 동정하는 거냐?”

 벌컥 화를 내리라 생각했던 랜서의 예상과 달리 굳었던 아처의 표정이 부드러워진다.

  “Faker가 하는 말이다. 들어서 손 될 것은 없어.”

 덤덤한 어조가 되려 쓸쓸하다. 창병은 앞 뒤 생각하지 않고 궁병의 어깨를 끌어당겨 키스했다. 살을 섞기 위한 거친 입맞춤이 아닌 감미롭게 내려앉는 키스는 아마도 서로에게 처음이지 않았을까. 찬찬히 언제까지고 계속 될 것만 같던 키스 사이로 문득 아처가 중얼거렸다.

  “..무슨 꿍꿍이지?”
  “서비스가 과해서 돌려준 거뿐이야. 게다가..”
  “…….”
  “…….”
  “……게다가?”

 푸른 영령이 빙글 웃는다.

  “곧 자정이다. 어차피 리셋 될 거 싸가지 없는 활잡이랑 함께 맞이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해.”
  “…과연.”

 다시금 다가오는 오는 핏빛 눈동자에 마음을 울렁이며 회색 눈동자가 스르륵 닫히었다.
 처음이자 처음이 아닌 순간이 가까워 오는 것에 전율하는 붉고 푸른 두 영웅 사이로 밤의 선율이 스쳐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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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제법 마음에 드네요.. 옛날 글이지만..
역시 페이트는 창궁이 좋은.. 길가는 길가로 좋고 ㅋ_ㅋ

창궁도 굉장히 불탔었는데 당시 상황이 여의치 않았던가 그래서 불완전연소로 끝났네요.
그 이후에는 많은 분들이 연성해 주셔서 그냥 소비러로 만족해 버린.. ㅋ_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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