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ate/Ataraxia 기반 글입니다
※ 궁병이 처음 이 세계에서 눈을 떴을 때 시점
※ 딱히 BL적 요소는 없을지도?
※ 꽤 오래 전 글입니다. 와하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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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떴을 때, 어째서 인지 사내는 [여기]에 있었다. 그리고 왜 인지 머리 속에는 영국으로 가버린, 마스터 토오사카 린으로부터의 명령이 각인되어 있었다.
[후유키 마을을 부탁해.]
여전히 도도한 목소리로 소녀는 말했다.
하지만..
마을을 부탁한다니 구체적으로 뭘 어쩌라는 건지. 그리고 일본과 영국이라는 어마어마한 거리를 사이에 두고 계약이 존속될 거라 믿는 자신감의 근거는 어디서부터 날아든 건지.. ..랄까 날아든 게 아니라 천성의 것인가. 토오사카 린이란 소녀는 본인의 레벨이 높은 것은 인정하지만 때로는 레벨 이상의 것을 앞에 두고도 달려드는 경향이 있어서 곁에 있는 사람 심장을 졸이게...........크흠.. 린에 대한 것은 이쯤 해 두고, 어쨌든 그녀의 포괄적이면서도 강인한 목소리로 뇌리에 맴돌며 궁병을 옭아매었다. 린의 명령을 수행하는 것 자체에 불만은 없다. –계약이 한번 끊어졌었던 상태라고 해도- 마스터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서번트의 역할이니까. 하지만 지금의 상황이 수상쩍기 짝이 없다.
우선 자신이 실체화 하고 있다는 것부터가 의심스럽다. 일본과 영국이라는 지구 반절분의 거리에서 마력이 공급되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설마 섬나라와 섬나라니까 어딘가 이어져 있소-!! 라는 바보 같은 설정일리도 없으니 어떻게든 마력이 유통되고 있다는 것인데 일반적인 사역마(使役魔)라면 모를까 서번트라는 어마무시할 정도로 대량의 마력을 먹어치우는 존재를 구현하는 것에 있어서 먼 거리는 마력 공급이 원활하지 않음을 생각했을 때 실체화한 자신은 상당히 의아스럽다. 게다가..
“이 상황은 기억에 없어.”
[에미야 시로]는 이런 일을 겪은 적이 없다. 성배 전쟁이 성배의 파괴로 끝났음에도 다시 재현된 일 따위.
궁병은 굳은 얼굴로 생각에 잠겼다. 그렇다면 이건 [에미야 시로]의 또 다른 [가능성]의 미래인가? 그게 아니면--- 그저 [신기루]인가. 후자라면 어떻게 해야 끝이 나는 건가.
“……일단은 탐색인가.”
가만히 있어봐야 해결될 것은 없다. 단서가 없을 때는 단서를 찾아 움직이는 것이 상책이다. 그리 생각하고 성골포로 된 윗도리를 벗었다.
그리고 궁병은 첫번째 서번트를 만난다.
“라이더..”
“…….”
장을 보러 나온 모양인지 장바구니를 옆에 낀 프로모션 좋은 자색 머리의 여자가 사내의 부름에 돌아본다. 대꾸의 말은 없지만 눈빛으로 무슨 일이냐 묻고 있었다. 생각해 보자면 라이더가 존재하고 있는 것은 그리 이상할 것 없다. 마력대량소비 물체인 서번트이지만 그녀에게는 마토우 사쿠라 라고 하는 무한 –에 가까운- 에너지 공급원이 있으니 말이다. 그걸 생각하면 그녀는 이 기괴한 현상의 일부가 아닐지도 몰랐다.
“볼일이 없다면 이만.”
무뚝뚝하게 말하고 사라져 가는 키 큰 여성의 등을 보며 아처 역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녀와의 만남으로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 대화를 하려던 것이 아니라 존재의 확인을 하려던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손 쉽게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들에 대해 해명할 수 있을 듯한 생각이 두 가지가 떠올랐다.
“양쪽 다 확인해 볼 가치는 있겠지.”
나지막이 중얼거리고 우선 류도우사(寺)로 향한다.
- 약 1시간 후..
“…….”
“…….”
내려다 보는 푸른 눈과 올려다 보는 회색 눈. 둘 사이에 살기는 없었으나 그렇다고 따스한 감정 교감의 빛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긴 침묵 속에 먼저 입을 연 것은 아처 쪽이었다.
“캐스터는?”
“마스터라면 소이치로와 함께 있겠지.”
짤막한 질문에 돌아오는 짤막한 대답. 양측 모두 그 이상의 것은 묻지 않았다. 그저 잠시 후에 아처가 빈정거리는 듯 한마디 더했을 뿐이다.
“서로 사람 다루는 게 험한 마스터를 둬서 고생이군.”
“아아, 하지만 나쁘지 않아. 이유야 어쨌든 시바 세계의 공기는 반가우니 말일세.”
이름없는 사무라이는 엷게 미소를 지었다. 그의 미소에 거짓은 없어 보였다. 아처는 방금까지와는 다른 의미로 침묵 하다 등을 돌렸다. 원하던 정도는 얻었다. 라이더는 둘째치고 있을 리 없는 서번트 들 중 둘의 존재를 확인했다. 캐스터와 어쌔신, 라이더, 그리고 자신.. 남은 수는 셋.
우뚝..
갑자기 아처의 발이 멈추었다. 영령은 하얀 눈썹 사이를 잔뜩 찌푸렸다.
“일곱이 아니라 여덟이군.”
금색의 최고(最古)왕이 기억남과 동시에 두통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뭐, 그래도 이쪽은 어떻게든 무시 가능한 No.2 레벨이다. 문제는 No.1 쪽인데..
[에미야 시로]에게 있어 [고토미네]라는 존재가 천적이었듯 영령 에미야에 있어 영령 쿠-훌린은 천적이었다. 정신적 천적..
“…….”
그 녀석은 제일 나중에 확인하자. 아처는 서둘러 걸음을 옮긴다. 마치 당장이라도 녀석이 나타나기라도 할 것을 두려워하기라도 하는 양. 그런데..
“여, 아처-.”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
매도 먼저 맞는 것이 좋다.(?)
온갖 속담들이 머리 속에 난무하는 가운데 최종적으로 아처가 내린 결론.
[이건 환청이다.]
고로 무시하고 지나가자.
“어잇!!”
그러나 아처의 자그마한 소망은 어깨를 붙잡는 강한 손에 의해 조각조각 깨어졌다. 그럼에도 일순간 현실을 부정하고픈 자신이 있음에 눈물이 난다.
“…….”
“사람이 불렀으면 맞장구 정도는 하라구.”
“사람이 아니잖나.”
“소소한 건 넘어가.”
“…후우.. 설마설마 했지만 네 놈도 있었군.”
하얀 머리 영령의 불쾌한 목소리가 그를 부른 영령을 유쾌하게 만들었는지 키들키들 웃는다. 더욱 더 기분이 나빠져 미간을 있는 대로 좁히고 마는 궁병 클래스의 영령.
“…라는 것은 고토미네도 살아…….”
돌아서 랜서를 마주하며 묻다 말을 잃는다. 현란한 알로하 셔츠가 강렬하게 눈 안으로 뛰어든 탓이었다. 한술 더 떠 아래는 딱 붙는 가죽바지. 게다가 무서운 것은, 정말로 공포스러운 것은 그것들의 조합이 랜서, -영령 쿠-훌린- 에게 두려울 정도로 어울린다는 것이었다.
아처의 반응이 의미하는 바를 캐치하지 못했는지 랜서는 붉은 눈에 슬쩍 그림자를 띄웠다 사그러트리며 고개를 젓는다.
“아니.”
“그럼 어째서..”
“자세히는 말 못해. 마스터는 있다. 하지만 고토미네는 아냐.”
그야 서번트는 마스터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저 금색의 왕 빼고는. 더구나 랜서는 아처와 달리 단독행동의 능력도 없다. 그의 마스터가 누구인지 궁금해졌으나 랜서의 표정으로 보아 가르쳐 줄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어 보였다. 아니, 그 이전에 500m밖에서도 눈에 띌 것 같은 이 남자의 곁에서 한시 바삐 떨어지고 싶다.
“마지막 질문. 길가메슈도 함께 인가?”
“그래.”
“정보 제공에 감사하지. 그럼..”
서둘러 그로부터 벗어나려는데 이번에도 역시나 랜서의 손이 그를 저지한다.
“이번엔 내 차례야.”
좌절하지 말자.
살아있을 적 어딘가의 플래카드로 한동안 유행했던 문장이 지금 그의 머리에 떠올랐다 사라진다. 아처는 짧은 순간 신음하며 되도록 감정은 드러내지 않으려 애쓰며 창병을 보았다.
“뭔데.”
“아인츠베른 성에 가는 거라면 관둬. 덩치 산만한 서번트 님께서 살기등등하게 번견역을 하고 계시니까.”
“진짜 번견인 넌 놀고 있고 말이지.”
아처의 빈정거림에 예상대로 삽시간에 공기가 영하로 떨어지지만 백발의 영령은 바라던 바였기에 두렵지 않았다. 싸늘한 공기 속에 랜서가 피식 웃는다.
“그렇게 개를 무시해 제끼면 언젠가 개한테 물린다. 아처-.”
“딱히 개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붉은 눈의 미친개만 싫어할 뿐이야.”
“그거 유감이군. 그 붉은 눈의 미친 개는 싸가지없는 활잡이가 의외로 마음에 드는 모양인데 말야.”
“뭣..”
과연 언제나 침착한 붉은 기사도 방금의 말에는 당황하고 만다. 언제나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궁병임을 알기에 창병은 허를 찔린 듯한 아처의 표정을 켈켈거리며 즐거워 한다.
“성배 전쟁 때는 적이었지만 성배가 없는 지금은 싸울 이유도 없으니 사이 좋게 지내자구. 활잡이씨.”
“별일이군. 싸움이라면 환장한 녀석인 줄 알았는데.”
비아냥 거릴 의도였지만 아일랜드 영령은 대수롭잖은 듯 키들거린다.
“원한다면 받아들일 용의는 얼마든지.”
영령 쿠-훌린의 말에 결국 아처도 피식 웃으며 거만하게 어깨를 으쓱이고 만다.
“관두지.”
“현명한 생각이야. …근데 서번트 들에 대해서는 왜 알아보고 다니는 거냐?”
랜서의 질문에 회색눈이 가느리해졌다. 아마도 랜서는 대답을 알고 있을 터였다. 그럼에도 물어보는 저의는 단순한 짓궂은 장난일까?
“대답은 알고 있을 텐데.”
“....헷. 역시나. ..정말 포기할 줄을 모르는 군 그래.”
“…….”
“마스터와 서번트는 닮은꼴이기 마련이라는 건가.”
그리 말하며 창병은 자신의 원(元) 마스터를 떠올린다. 그녀 역시 자신과 닮은 구석이 있었을까…하고. 하기야 이제와 생각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마는.
스스로의 모습이 광대보다도 우스워 클클 혀를 찬다.
“이래서 난 네 놈이 껄끄러워.”
쿠- 훌린의 말은 적의 기사에게 놀라움을 안겼다. 동그랗게 뜬 회색 눈을 보며 아일랜드의 창기사가 웃는다. 아처의 상징만큼이나 붉은 짐승의 눈이 공허하면서도 유쾌하게 휘어지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왔다.
“!!!!”
자유분방하고 결코 누구에게도 속박되지 않는, 바람의 닮은 남자는 이미지처럼 바람 같은 속삭임을 남기고 궁병으로부터 등을 돌렸다. 뒤에 남은 아처는 찰나의 순간 일어난 일에 잘못 들었나 생각했으나 아련하나마 그의 목소리가 귓가에 남아 현실이라 고(告)한다.
미약하기 짝이 없는 청의 기사의 흔적이 행여 날아가 들을 수 없게 될까 백발의 영령은 손을 들어 그의 목소리가 스친 귀를 덮었다.
- 미련이란 단어가 떠올라 버리거든.
한동안 랜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궁병이 서서히 손을 뗀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서서히 쓰디 쓴 미소가 그의 입가에 퍼져나갔다.
“피차일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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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가 더 잘 썼던 것도 같고...?
분명 뭔가 연재로 쓰려고 했었던 느낌만 남아있네요.. ㅎ_ㅎ;;
'☆★ 2차 ★☆ > + 기타'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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