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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차 ★☆/+ 기타

[히프마이/히후돗] 오늘은술렁거립니다(下)

by 필묘Q 2020. 12. 23.

1. 본 글은 여성향입니다.
2. 남성성우Rap Battle Project [Hypnosis Mic]이 원작입니다.
3. 마천랑 그룹 / 이자나미 히후미 X 칸논자카 돗포

4. 단편입니다.

5. 몰래 내용 변화가 있을 수 있습니다.
6. 안구테러에 의한 위자료는 지불하지 않습니다.

이상의 조건에 혐오 혹은 거부감을 느끼시는 분은 뒤로가기를 부탁드립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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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돗포, 무슨 일 있나?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손수 만든 카레를 퍼 주며 리오가 말했다. 그에 돗포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릇을 든 손이 멈춘다. 소속한 팀은 다르지만 이런저런 연으로 제법 친하게 지내고 있는 전직 군인의 말이 –정확히는 태도가- 의외였다. 그는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사람은 아니어도 지극히 방관자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경향이 있는 이였다. 그게 돗포로 하여금 그와 같이 있는 공간을 편하게 느끼는 이유기도 하였지만.
 스스로가 정한 아슬아슬한 한계까지 상황파악 혹은 인물파악을 하다 한계선에 달했을 때 비로소 –누구보다도 맹렬하게- 움직이는 그가 자진해서 말을 건넸다는 건 리오가 생각하기에 돗포의 무언가가 도저히 봐줄 수 없다는 얘기였는데, 그 무언가가 뭔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무슨 일이라뇨?”
  “입술이 터졌다.”

 덤덤한 목소리로 샐러리맨의 모습을 지적해 와 돗포가 엣, 하고 제 얼굴에 손을 대더니 이내 에헤헤 실없이 웃었다.

  “제 얼굴에 피곤이 가시지 않는 건 언제나의 일이잖습니까.”
  “…….”
  “우….”

 무언으로, 눈빛으로 책망을 하는 리오에 견디지 못한 건 돗포였다. 슬쩍 시선을 피하며 뺨을 긁적였다. 역시나 리오는 눈치 빠르게 돗포의 거짓말을 간파한 모양이다. 하지만 그걸 쉽게 인정해서 그에게 속사정을 얘기하고 싶진 않았다. 그는 좋은 사람이었고 말하면 얼마든지 들어줄 이라는 것도 알았지만 일종의 자존심 문제였다. 신주쿠에서 있었던 일을 요코하마에 얘기하는 것도 말이지….
 돗포가 다시금 뺨을 긁적이며 –여전히 시선은 마주하지 않은 채- 자그맣게 중얼거렸다.

  “지나간 일입니다.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모기만한 목소리는 리오더러 들으라는 건지, 아니면 스스로에게 하는 말인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리오는 더는 추궁하지 않았다.

 

 

  “돗포, 무슨 일 있어?”

 리오에 이어 히후미까지 무슨 일 있냐며 지적해 와 돗포가 움찔한다. 샐러리맨의 입술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말하고 있으니 불알 친구 또한 전직 군인과 마찬가지로 돗포의 입술이 터진 걸 말하는 것임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아니, 이 사람들이 남의 얼굴만 쳐다보고 사나.

  “…그냥 피곤해서 그래.”
  “피곤한데 입술에 멍이 드냐?”

 엣, 그건 몰랐는데. 깜짝 놀라는 돗포를 대신해 히후미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마치 자신이 다친 것마냥 아파하는 모습에 마음이 수런거린다. 그 어수선함에 그만 히후미가 뻗어온 손을 보지 못했다.

  “읏..”

 히후미의 손이 가볍게 돗포의 턱을 붙들고 엄지로 입술을 슬 쓸었다. 멍이 들었다는 그의 말대로 조심스러운 동작에도 미미한 아픔이 스친다. 그러나 아픔보다 그와의 접촉이 더 돗포를 놀라게 하였고 심장을 마구잡이로 날뛰게 하였다. 마음 정리한다고 정리했는데 아직 모자랐나 보다. 그대로 그의 손에 얼굴을 비비고 싶은 기분을 단호하게 눌러 담고 슥 턱을 돌려 기분 좋은 접촉에서 벗어난다. 그제야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은 히후미가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에 아까와는 또 다른 의미로 심장이 날뛴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입술 끝을 억지로 끌어 올렸다.

  “나, 오늘은 바빠서 먼저 간다고 선생님한테 말해줘. 오늘 빠진 보충은 이 담에 꼭 하겠다고도 전해주라!”
  “엇, 야!”
  “나중에 봐!!”

 붙들려는 히후미의 목소리를 못들은 척 헤어짐을 고하고 재빨리 뒤를 돌았다. 더 쳐다보고 있으면 거짓말이 탄로날까 두려웠다. 아니, 이미 탄로났겠지만 돗포의 거짓말을 눈치챈 히후미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 보고 싶지 않았다. 행여나 다행이란 표정이라도 짓는다면 자신은 정말로 재기불능이 될 것이었다.
 그리고 돗포의 생각과는 정반대로 히후미는 몹시도 상처 받은 얼굴로 멀어져 가는 친구의 등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 진짜 오늘 운수 거지 같네.’

 아니, 이건 예견된 상황이었으니 운수랑은 상관없나.
 자신을 둘러싼 불량배들을 스윽 둘러보며 돗포가 한숨을 –속으로- 내쉬었다. 신주쿠에는 많은 골목이 있고 개중엔 으슥하지만 위험하지 않은 길이 있는 반면, 으슥한 대로 위험이 있는 길이 있는데 지금 돗포가 지나던 골목은 후자였다. 스스로 우범지대를 지나고 있었으니 범죄와 조우한다 한들 하소연할 구석은 없었다.
 서류가방을 꼭 끌어안는 것으로 내용물을 보호하면서 바쁘게 눈알을 굴려 빠져나갈 구멍을 찾는다. 이 같은  샐러리맨의 행동을 재밌어 하며 불량배들이 시시덕 껄렁거린다.

  “되게 귀중한 거 들었나 보네.”
  “우리도 구경 좀 시켜 주지?”
  “미,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그냥 보내주세요오오오.”

 안에 든 서류는 돗포에게나 중요한 거지 불량배들에겐 종이쪼가리에 불과할 것이었다. 그런 물건을 이들이 곱게 다뤄주리란 예상은 낙관주의자인 이들이라도 하기 힘들 것인데 하물며 돗포라면 더욱 무리였다. 돗포의 서류가방 안에는 히프노시스 마이크도 들어있었지만 배틀도 아닌 상황에서 –설령 그게 제법 위험한 경우일지라도- 쓴다는 선택지는 그에게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필사적으로 가방을 끌어 안아 단단히 가드하며 저번과 같은 상황의 되풀이를 예상한다. 즉, 얻어맞을 것을 예상했다. 눈을 꼭 감고 찾아들 고통에 대비하는데 그에 앞서 낯선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늬들 남의 구역에서 무슨 짓이냐?”

 돗포가 눈을 뜬 것과 불량배들이 목소리의 주인을 찾아 돌아본 건 거의 동시였다. 적색과 청색의 점퍼를 걸친 러프한 옷차림인데도 묘하게 스타일리쉬한 느낌이 나는 청년이 굳은 표정으로 돗포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돗포는 문득 청년의 모습 –특히 인상 깊은 오드 아이가- 이 낯이 익어 기억을 더듬다가 언젠가 히프마이 배틀 전초전으로 만났던 만남을 떠올리곤 눈이 휘둥그래졌다. 그러한 샐러리맨의 반응을 –제법 떨어져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눈치 챈 이케부쿠로 디비전을 대표하는 B.B의 리더 이치로가 한쪽 입술을 씨익 끌어올렸다.

  “내 구역에서 멋대로 설치다니 목숨이 별로 아깝지 않은가 봐?”

 불량배들도 상대가 누군지 알았는지 눈에 띄게 당황하는 기색이었지만 머릿수에 없던 용기가 –세간에선 이를 두고 만용이라 한다- 치솟았던 모양이다.

  “하! 제 아무리 이치로라도 이 숫자를 상대로 어쩔 건데?”

 심지어 그걸 제 스스로 입에 담기까지 하는 추태에 이치로의 색이 다른 두 눈에 경멸의 빛이 떠오른다. 확실히 저 숫자를 상대로 상처 하나 없이는 힘들지도 모르지. 하지만 질 숫자도 아니었다. 가볍게 목을 흔들고 손가락을 뚜둑거리며 청년이 씨익 웃었다.

  “시험해 볼 테냐?”
  “읏..”

 그리고 시작된 난투는 그야말로 액션 영화를 방불케 하는 광경이었다. 하지만 영화는 스크린이라는 가림막이 있어 어떤 일이 벌어져도 무서울 게 없지만 눈앞에 벌어지는 생생하니 피 튀는 싸움판은 돗포의 인지 아득한 너머에 있는 것이었다. 서류가방을 마치 제 목숨줄마냥 꼭 붙들고 있는 돗포를 곁눈질로 보며 이치로는 내심 혀를 찼다. 저래서야 싸움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생각하는 게 좋겠다. 그나마 가만 있는 것으로 이 녀석들 신경을 쓸데없이 끌지 않아 다행이다. 날아드는 주먹을 피해 상대의 발을 걸어 나동그라지게 만들곤 곧장 다른 녀석을 향해 무릎을 차 올렸다. 예상치 못한 공격에 혀를 깨물고 만 상대의 입에서 핏줄기가 튀었다.

  “이 새끼가!!!”

 수적으로는 분명 자신들이 유리하건만 점점 불리해지는 상황에 화가 난 한 명이 품 속에 손을 집어넣더니 피스톨을 꺼냈다. 나와봤자 잭나이프 정도이리라 생각했던 이치로는 처음으로 난색을 표했다. 저런 건 또 어디서 구한 거람. 가뜩이나 일본은 무기 휴대에 엄격한 편인데 세상이 이렇게 된 뒤로는 더욱 심해져서 총기류는 그야말로 공권력의 상징이나 다름없건만 어떻게 구한 걸까. 출처가 몹시도 궁금해지는 순간이었으나 지금은 그보다 이 자리를 모면하는 게 급선무였다.
 이치로가 움찔하는 모습을 놓치지 않고 본 이들이 상황이 역전되었다 확신하고 히죽히죽 웃기 시작한다. 맨 손으로 못 당하니 무기를 들고 좋아하는 꼬락서니가 배알이 틀리는데,

  “초, 총이라니 비겁하잖습니까!”

 그때까지 가만 있던 돗포가 이치로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목소리는 잔뜩 흔들리고 서류가방을 쥔 손도 바들바들 떨고 있으면서 청년 앞에 나선 모습은 어딘가 결의에 가득 차 있었다. 설마 저를 지킬 셈인가? 이치로가 돗포의 행동에 흥미 깊은 눈으로 그의 등을 바라보았다.

  “하아?! 멋진 척이라도 하고 싶은 거야? 리맨 주제에?”
  “머, 멋진 척이라니 그런 굉장한 일을 하려는 게 아닙니다. [그걸] 사용하려는 게 얼마나 위험한 지 모르는 듯하니 충고하려는 겁니다.”
  “총이잖아. 위험한 게 당연하지. 뭔 헛소리를….”
  “일본에서 사용할 경우, 당신들이 사용할 경우의 위험성을 말하는 겁니다.”

 말하는 동안 무언가 그의 안에서 변한 걸까. 아니면 이게 그의 본모습이었던 걸까.

  “당신들, 불법체류자도 외국 국적 소유자들도 아니죠? 일본 국적을 지니니 이들이 일본 땅에서 허가 받지 않은 총포를 소지하고 있다는 것은 중죄입니다. 그저 편의점에서 강도질 하는 것보다도 죄질이 무겁다고요. 게다가 그걸 발포까지 하게 되면 위험도는 한없이 올라갑니다.”

 기이한, 위압감마저 느껴지는 어조에 불량배들이 움찔 한 발 물러섰다. 마치 영업할 때와 같이 의학 용품에 관한 설명을, 타사와 자사의 차이가 무엇인가 조근조근 설명하듯 차분한 모습은 아까까지 구석에서 벌벌거리던 샐러리맨과 동일인물인가? 이치로는 제 눈을 의심하며 돗포의 모습을 계속 관조하였다. 단순한 초식남이 아니었네.

  “여기서 말하는 위험도란 일본이, 이 나라가 생각하는 댁들의 위험도를 말합니다. 범죄의 경중을 따지는 것보다 개인에 대한 경계레벨이 높아지면 더 죄질이 커진다는 거 알아요?”

 이제 돗포의 얼굴엔 희미한 미소마저 떠올라 있었다. 반면 불량배들은 등 뒤로 차가운 기운이 흐르는 오싹함을 느꼈다. 원래 이런 일에는 기세가 중요한 법이다. 뽑은 순간에는 사용할 생각도 만땅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더해서 돗포의 설명을 들으며 기세는 한풀 꺾였다. 이젠 총기라는 커다란 무력 사용에 대한 들뜸보다 사용 후의 후폭풍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커지고 있는 게 눈에 보였다.
 이치로가 속으로 휘파람을 휘익 불었다. 제법이잖아? 하지만 상대는 피스톨까지 어떤 루트로든 손에 넣은 불량배 중에서도 질 나쁜 축에 속하는 녀석들이다. 이대로 곱게 끝날지 어떨지. 그리고 이런 이치로의 예상은 안타깝게도 들어맞고 만다.

  “나불나불 잘도 지껄이고 있다만 결국 안 들키면 그만이잖아?”
  “?!!”

 그리 말하며 불량배는 품안에서 다른 무언가를 꺼냈다. 검은 원통형의 금속. 그게 무엇인지 거리가 있어 제대로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이런 상황에서 나오는 물건이니 제대로 된 것일 리가 없었다. 이번엔 돗포보다 이치로가 먼저 움직였다. 골목에 굴러다니던 캔 쓰레기를 상대에게 발로 찼다. 맞으면 좋고 안 맞아도 주의를 끌면 충분하단 의도였는데 요행히도 상대가 마침 꺼내던 물체를 맞춰 떨어뜨렸다. 주울 틈을 주지 않고 달려들어 멀찍이 차버리곤 주먹을 날린다. 다시금 시작된 난투는 아까보다 상대들의 독기가 더 오른 탓인지 지저분하고 난잡했다.
 자신보다 약하지만 끈질기게 달려드는 불량배들에 이치로가 조금씩 밀리기 시작한다. 거기다 쓰러져 있던 녀석들까지 시간이 지나며 다시 일어서는 통에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지로에게 행선지를 말하고 올 걸 그랬다며 혀를 차던 때였다. 검은 그림자가 그들 사이에 뛰어드는가 싶더니 불량배들을 공격한다. 갑작스런 조력자의 등장을 놀라던 것도 잠시, 금새 그를 따라 –그와 등을 마주하고- 불량배들을 마주하였다. 일대다수가 이대다수로 변한 것만으로 상황은 순식간에 기울기 시작했다. 몇 분도 되지 않아 전부 뻗어버린 불량배들 사이에서 이치로가 피스톨을 회수했다.

  “그걸 어쩔 셈이지?”

 갑작스레 끼어들었던 조력자의 물음에 비로소 상대를 파악한 이치로가 겍, 하고 미간을 찌푸렸다.

  “요코하마….”
  “리오다. 그 무기를 어쩔 셈이지.”

 이치로가 원한 건 그게 아니었겠지만 냉큼 제 이름을 대곤 다시금 –독촉하듯- 묻는 리오에 이치로는 쯧, 혀를 차며 손에 든 무기를 내려다 보았다. 차가운 금속성의 무기는 제법 묵직했다. 이 작은 녀석이 히프노시스 마이크와는 다른 의미로 사람의 생명을 순식간에 앗아갈 수 있다는 게 그저 아이러니할 따름이다.

  “내키진 않지만 짭새한테 갖다 줘야지. …요코하마에 있는 녀석 말고.”

 말하던 중간에 리오가 달라는 제스처를 취하려 해 잽싸게 덧붙이는 이치로였다. 같은 경찰이라도 요코하마에 속한 경찰, 쥬토의 악명은 이케부쿠로까지 퍼질 만큼 유명했다. 상대를 봐 가면서 악행 -?- 을 저지르기에 잘리진 않고 있는 듯 하다마는 –윗선에 줄이 있다는 소문도 들었다- 이래저래 믿을 수 없는 녀석이라 이케부쿠로 관할의 이치로가 아는 이에게 전달할 생각이었다. 리오가 이치로를 지그시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 나름대로 이치로를 파악한 듯해 청년은 히죽 웃으며 대화 주제를 바꿨다.

  “그나저나 요코하마에서부터 먼 걸음 하셨구만?”
  “…….”

 리오는 대답대신 돗포를 보았다. 그때까지도 서류가방을 움켜 안고 있던 샐러리맨이 전직 군인의 곧게 찌르는 듯한 시선에 찔리는 구석이 있어 눈을 피했다. 리오가 낮게 한숨을 쉬며 팔짱을 꼈다. 둘을 번갈아 바라보던 이치로가 피실 웃었다.

  “늬네 적이잖아?”

 일부러 걱정 되어서 온 거야? 장발 청년의 –재밌는지 웃음기 어린- 질문에 전직 군인이 특유의 딱딱한 어조로 답했다.

  “지금은 배틀 중이 아니다. 친구를 돕는 건 당연하잖나.”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리고 또박하게 친구란 단어를 입에 올리는 리오에 오드 아이가 놀란 빛을 띄었다. 그게 기분에 거슬렸는지 흔치 않게 리오의 눈썹이 불쾌하니 꿈틀거렸다. 이치로가 쿡쿡거리며 전직 군인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헤에, 요코하마 놈들은 다 몹쓸 놈들이라고 생각했는데 멀쩡한 놈도 있었네. 난 야마다 이치로.”
  “리오우.”

 자신을 향해 내밀어진 손을 조금 깊은 눈빛으로 바라보던 리오가 느릿하게 손을 내밀어 맞잡아 가볍게 흔들고는 재빠르게 놓았다. 마치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듯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이치로가 그에 반응하기 전에 리오가 먼저 돗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돗포.”
  “읏, 네..”
  “말하고 싶지 않다면 내겐 하지 않아도 괜찮다. 하지만….”

 드물게도 말끝을 흐리며 리오가 엄지를 들어 제 어깨 너머를 가리켰다.

  “저 친구에겐 말하는 게 좋지 않을까.”

 전직 군인이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 돗포와 이치로의 시선이 함께 움직였다. 그리고 골목 입구에 잔뜩 굳은 표정으로 서 있는 히후미를 발견하였다. 화려한 차림새가 색채를 잃을 정도로 시무룩한 표정은 평소 히후미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가라앉은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돗포들이 히후미를 발견한 걸 계기로 신주쿠에서도 유명한 호스트가 그들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히후..”
  “…….”

 그리고 그대로 돗포의 손목을 낚아채 끌고 간다. 질질 거의 뒷걸음질로 깡총깡총 끌려가다 겨우 균형을 잡고 돌아서 금발 호스트를 좇으며 돗포가 당혹스런 목소리를 내었다.

  “우왓, 히후미, 히후미! 자, 잠깐..”

 하지만 히후미는 들을 생각이 전혀 없는 듯 묵묵히 걸어나간다. 이대로는 그대로 사라지게 되리란 예감에 돗포는 어깨 너머를 돌아보았다. 벙찐 표정의 이치로와 어느 정도 예상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리는 리오가 보였다.

  “도와주셔서 고마웠습니다!!”

 

 

 멀어져 가는 히후미와 돗포를 보며 이치로는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본다는 옛말을 떠올리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옛 얘기 속 개처럼 돗포를 쫓고 있었던 건 아니지만 당혹스럽다는 점에선 비슷하다고 할 수 있었다. 소심하기만 한 줄 알았더니 제법 쩌렁한 소리로 외칠 줄도 아네, 따위의 상황과 어울리는 듯 어울리지 않는 생각을 하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뭔가 사정이 있나 보네.”
  “…….”

 딱히 리오의 대답을 기대했던 건 아니지만 묵묵하니 돌아서 가는 전직 군인에 이치로는 하아, 나직하게 한숨을 쉬었다. 정말이지 히프마이 참가자들은 다들 개성이 지나치다.

  “어이, 군인.”
  “…?”

 이케부쿠로 청년의 부름에 리오가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았다. 허리에 손을 대고 한쪽 입술을 장난스럽게 올리며 이치로가 말했다.

  “먼 걸음 하셨는데 그냥 보낼 수는 없지.”
  “…….”

 설마 히프마이 배틀을 하자는 건 아니겠지. 전직 군인이 미미하게 표정을 굳혔지만 그를 눈치채지 못한 이치로가 파안하며 말을 이었다.

  “맛있는 쯔케멘 집이 있어. 이케부쿠로까지 와서 안 먹고 가면 후회할 집이야.”
  “음?”
  “사줄 테니 따라와.”

 그리곤 대답도 듣지 않고 먼저 성큼 걸음을 옮긴다. 묘하게 사람의 말을 듣는 듯 안 듣는 부분은 요코하마 리더인 사마토키를 닮았다. 아, 그러고 보니 둘이 뭔가 인연이 있는 듯 했으니 닮은 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한 건가. 가벼운 추측을 마친 리오가 이윽고 이치로의 뒤를 따랐다.

 

 

 

 한편, 돗포는 하염없이 히후미에게 이끌려 신주쿠까지 내려가고 있었다. 처음엔 자신이나 히후미의 집으로 가는 건가 했는데 –분명 처음엔 그리 가려 했던 것 같기는 했다- 최종적으로 그들이 도착한 곳은 놀이터였다. 어렸을 적 히후미와 종종 놀았던 장소로 그들이 커가면서 추억 한 켠으로 물러나며 조용히 잊혀져 가던 곳.

  “여긴….”

 익숙하디 익숙한 장소. 하지만 상황에 맞지 않는 장소였다. 돗포가 의아한 표정으로 히후미를 돌아보았다. 그는 여전히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너, 일부러 다니던 길 바꾼 거지.”
  “…….”
  “나랑 안 마주치려고.”

 금발 청년의 지적도 이유도 전부 맞았지만 돗포는 침묵을 고수했다. 그리고 그 침묵을 긍정으로 받아들인 히후미가 마른 세수를 하다가 체념에 가까운 숨을 길게 내쉬곤 힘없이, 하지만 억눌린 감정이 짓이겨져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저기 말이지, 돗포는 머리 좋잖아. 내가 어떻게 해야 해?”
  “히후미….”
  “네가 날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혼란스럽긴 했지만 싫진 않았어. 기분 나쁘지도 않았어. 하지만 두근거리지도 않았어. 이런 기분으로 사귀기 시작해도 되는 거야?”

 그래도 된다면 자신은 상관없다며 히후미가 말했다. 여전히 차분하게 이어지지만 어느 틈엔가 그의 감정을 대변하듯 어조가 흔들린다. 항상 미소를 잃지 않던 입술은 스스로를 책망하며 아래로 쳐진 채 올라올 줄을 몰랐다. 언젠가 여성 공포증에 대한 괴로움을 토로하던 것과 몹시도 흡사한 히후미의 모습에 돗포는 저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가 제 행동을 깨닫고 거두었다. 아니, 거두려 했다. 슬그머니 돌아가던 돗포의 손을 그보다 더 하얀 손이 붙들어 가져간다.
 히후미가 붙잡은 돗포의 손을 끌어당겨 손바닥에 가만 입술을 묻었다. 호스트이기에 몸에 배인 행동인 걸까. 얼마나 많은 여자들에게 이 같은 행동을 했을까. 문득 떠오른 울적한 생각에, 스스로가 짜증나 손을 빼려 했지만 돗포를 붙든 손은 더욱 강하게 그를 움켜쥐었다.

  “난 바보라서 뭐가 정답인지 몰라. 하지만 네가 괴로워하면 나도 괴로워. 네 괴로움을 내가 덜어줄 수 있다면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보태고 싶어. 그건 정말이야.”
  “…히후미.”
  “그걸론…안돼?”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가 호스트의 두려움을 드러낸다. 혹여 거절이 돌아올 것을 겁내는 히후미. 예전부터 돗포는 그런 히후미에게 약했다. 애초에 히후미에게 제 마음을 고백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래서 사고처럼 말하고 난 뒤에도 그에게 좋은 대답이 돌아오리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경멸하지만 않아도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리 생각했던 걸 떠올리면 지금 이 상황은 돗포가 예상했던 중 가장 좋은 형태일지도 몰랐다.
 돗포가 가만 눈을 내리깔며 벗어나고자 했던 히후미의 손을 –위치상 손가락뿐이었지만- 이번엔 움켜쥐며 조심스럽게 제 소망을 입에 담아 보았다.

  “나, 나는 너랑 손도 잡고 싶고, 키스도 하고 싶어. 그리…,”

 조그맣게 이어지던 바람이 채 이어지지 못한 건 그를 읊어내던 입술이 타인에 의해 덮였기 때문이었다. 조심스럽게, 가만가만, 마치 어루만지는 듯한 입술은 상상보다 훨씬 부드럽고 따듯했다. 짧은지 긴지 알 수 없는 접촉은 그저 떨어지는 순간 진한 미련과 견디기 힘든 상실감을 돗포에게 남겼다.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있는 연갈색 머리 청년을 대신 해 금발 청년에 상냥하게 채근했다.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채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는 돗포를, 히후미는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처음으로 인간을 눈부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뒷말을 기다리지 않고 재차 입을 겹쳤다. 이번엔 좀 전보다 조금 더 깊고 진하게. 눈물 맛이 나는 키스는 히후미가 경험했던 어떤 키스보다도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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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쓰고 싶은 건 다 집어 넣었는데 너무 많이 넣었나 싶은...(좀 슬프네요
젤 쓰고 싶었던 건 얘네 꾸금이었는데 그건 뭐.. 언젠가 다시.. 지금은 기력 소진했음.. ㅇ<-<

이 자리니까 말하는 건데 원래는 시리->따끈따끈 해피 로 가려 했는데 말이죠..
해피는 맞는데 따끈따끈이 사라진 거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착각일까요? =_=a

이번 편으로 기력을 많이 빨려서 다음엔 글 중간에 나온 리오랑 이치로 리오x이치를 써볼까 고민 중입니다(웃음
(밑으로 본편 글이 이어집니다. 일종의 에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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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돗포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다?”

 횡설수설, 이리 튀고 저리 튀는 히후미의 말을 긁어 모아 종합한 뒤 나름의 결론을 도출해낸 진구지에게 뜻밖에도 호스트는 고개를 저어 부정했다.

  “제가 돗포를 대하는 게 바뀔 리 없어요.”

 이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돗포는 저에게 소중한 녀석이라 말하는 청년에 진구지는 가만 검지로 관자놀을 두드렸다. 확신을 넘어 단언을 하는 태도가 일반적이지 않다는 걸 이 청년은 정녕 모르는 걸까. 하지만 자신이 멋대로 정의할 사안은 아니라 판단했기에 그를 진구지 스스로 지적할 생각은 없었다. 그저 현 상황은 몹시도 진구지에게 있어 흥미로웠다.

  “그렇다면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 이랄까 조언은 하나 뿐이로군.”

 처음 돗포를 보았을 때 비정상적일 정도로 비관적인 성격은 일상생활을 영위하기에 힘들지 않을까 싶었다.

  “그 전에 한 가지 물어봐도 되겠나?”
  “네!”

 돗포에 의해 히후미를 알게 되었을 때 낙관을 고수한 나머지 극단적으로 치닫는 성격은 기이하게 여겨졌다.

  “돗포 군의 고백을 들은 순간 무슨 느낌이었지?”


 진구지의 질문에 히후미의 표정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앞으로 자신이 할 말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 게 분명했다.
 이렇게 서로 양극과도 같은 두 청년이 용케도 친구관계를 유지해 나간다 싶었다. 그리 생각하면서도 어딘가 아슬아슬하고도 위태로운 관계를 과연 친구관계로 정의 내려도 되는 것일까 의아했었는데 지금이라면 분명히 말할 수 있었다.

  “두근거리진 않았어요.”

 연애를 해본 이들이 한결같이 말하는 두근거림은 느끼지 못했다며 풀 죽은 금발 청년은 무엇에 낙심하고 있는 것인가. 돗포의 마음에 부응하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 아니면 두근거리지 않은 자신에 대한 실망감?
 전자든 후자든 히후미의 돗포에 대한 마음은 일반의 그것이 아니다.

  “하지만 행복했습니다.”

 이들은, 연리지連理枝였다.

 

 

 한 그루, 한 그루 떼어놓고 보면 기괴하게 비틀어져, 어쩔 땐 고통에 몸부림치는 듯도 보이지만,
 함께 보았을 때 하나의 완성된 형태를 그리는,

 외부적인 -사상, 상식, 옳고 그름 등의- 어떤 것에도 방해 받지 않고,
 오직 서로에 의해서만 완결되는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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