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프마이/히후돗] 오늘은술렁거립니다(上)
1. 본 글은 여성향입니다.
2. 남성성우Rap Battle Project [Hypnosis Mic]이 원작입니다.
3. 마천랑 그룹 / 이자나미 히후미 X 칸논자카 돗포
4. 단편입니다.
5. 몰래 내용 변화가 있을 수 있습니다.
6. 안구테러에 의한 위자료는 지불하지 않습니다.
이상의 조건에 혐오 혹은 거부감을 느끼시는 분은 뒤로가기를 부탁드립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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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말하기껄끄럽고말해봤자말하지않기로결심했었는데너한테부담이될것이며나또한쪽팔려서접시물에코박고죽고싶은기분과함께두번다시네얼굴제대로쳐다보기힘드리란걸알지만….”
“에…, 돗포?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못 알아듣겠어.”
금발 –미인이라 해도 족함이 없는- 잘생긴 청년이 당혹과 미안함을 담아 말했다. 그러자 빠른 말 대회에 나가도 손색이 없을 듯한 속도로 독백에 가까운 언어를 쏟아내던 이가 입을 꾹 다물었다. 끊임없이 이어지던 목소리가 뚝 그치자 찾아든 고요함. 갑작스런 침묵이 어색해 히후미의 예쁜 금빛 눈동자가 허공을 헤맨다. 그런 히후미를 가만 바라보던 시린 호수색 눈이 깊은 색을 띠었다. 몇 번인가 숨을 고른 돗포가 이윽고 마음을 다지고 입을 열었다.
“좋아해, 히후미.”
“…에.”
이번엔 제대로 들었지만 그 말의 의미를 파악하는 데에는 아까보다 배로 시간이 더 걸렸다. 손님이 드문 까페의 구석 자리이긴 해도 아예 없는 건 아니라 간간히 사람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건만 히후미 주변의 시간만 멈춘 듯 굳어버렸다. 그런 친구의 모습을 돗포가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가 이윽고 머리를 감싸 안고 테이블 아래로 주저앉았다.
“아아아~!! 용기 내서 고백한 건 좋은데 그 다음을 생각하지 않았어! 갑작스레 고백 받은 상대가 얼마나 놀랄지 당혹스러울지 조금도 생각지 못했다구. 이 생각 짧은 녀석, 조금만 생각해 봤으면 알 수 있는 문제였잖아? 왜 생각 안 한 거야? 역시 나 따위는 이런 거에 어울리지 않아. 그냥 마음속에 품고만 있었어야 했다구우우우우우. …….”
거기까지 말하다 불쑥 말을 멈췄다. 좀 전 도래했던 고요와 닮은 정숙 속에 돗포가 길게 한숨을 내쉰다.
“그게 됐으면 이런 일은 없었겠지….”
“돗포?”
비틀비틀 일어난 돗포가 히후미를 돌아보며 힘없이 웃었다.
“그냥 그렇다는 거야.”
“…….”
뭐라 말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직업상 혀 놀리는 건 자신 있다고 자부해왔던 히후미였지만 지금만큼은 –마치 여성을 앞에 두고 있는 듯- 굳어서 움직이질 않는다. 돗포가 나를 좋아해? 나를?
초등학교 시절부터 알아왔던 친구다. 남자이지만 예쁘다 생각한 적도 제법 된다. 특히 중학교 때 여장한 걸 봤을 때는 농담 아니고 불알 친구인 줄 알았던 녀석이 실은 여자가 아닌가 싶어 한동안 고민에 빠졌던 적도 있었다. 물론 이후에 돗포에 의해 강제적으로 끌려간 목욕탕에서 확인 받아 다시는 그런 생각 하지 않게 되었지만. 아니, 중요한 건 이게 아니라….
뭔가 말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성과 감정, 몸과 정신이 제각각으로 노는 듯 제멋대로라 사고가 종합되질 않는 가운데 돗포가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하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클라이언트와 약속이 있어서 먼저 갈게.”
에? 그게 뭐야.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 말이 머릿속에 울려 퍼진다. 이러한 히후미의 상태를 알 리 없는 돗포가 무심하니 저가 마신 컵을 치우고 돌아와 서류가방을 집어 들었다. 정말로 가려는 것이다. 지금 이대로 돗포를 보내면 평생 후회할 거란 확신에 온 힘을 쥐어짜내 굳어버린 혀를 채찍질 하였다.
“…답은?”
그러자 맑다 못해 투명한 옅은 하늘색 눈동자가 의외라는 듯 동그래졌다가 곧 부드럽게 웃었다.
두근-
돗포의 웃는 얼굴 따윈 이때까지도 잔뜩 봐왔지만 저런 식으로 웃는 건 처음이었다. 분명 웃고 있는데 우는 것 같아….
“필요 없어. 히후미는 착하니까 분명 좋은 대답을 돌려주려고 할 거 아냐. 그런…, 동정은 필요 없어.”
아무래도 돗포 안에는 히후미가 내릴 답이 정해져 있는 모양이다. 히후미가 Yes라 답하든 No라 답하든 똑같은 대답으로 받아들일 듯한 태도가 몹시도 돗포다우면서 왜인지 화가 났다. 왜 내 대답을 네가 멋대로 추측하는 건데? 그렇게 쏘아 붙이고 싶었지만 솔직한 말로 아직 히후미 안에서 결론이 나질 않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고백이었으니 들은 자리에서 곧장 대답하지 못하는 게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곧장 대답이 나오지 못한 시점에 이미 답이 정해진 건 아닐까? 아아, 지금 내 머릿속은 아무래도 돗포틱 한가 보다. 자꾸만 부정적인 쪽으로 생각이 기울고 있어.
그럼에도 어떻게든 그를 붙들고 싶다는 바램으로 금발 청년이 되는 대로 말을 뱉었다.
“넌 그걸로 괜찮아?”
여태까지와 마찬가지로 지낼 수 있는 거냐 에둘러 묻는 소꿉친구에게 히후미가 오늘 처음으로 꾸밈없이 웃었다.
“그건 내가 알아서 처리할 문제야.”
“…남자답네.”
정말이지 너무 남자다워. 씩씩하기 짝이 없다구.
그리고 이번에야 말로 돗포는 히후미가 붙들 틈도 없이 자리를 떠났다. 남겨진 히후미만이 허탈하니 의자에 등을 기댄다. 짧은 시간이었을 텐데 정신적 소모가 극심하다. 히프노시스 마이크로 공격 당한 것보다 더 힘들고 아프다. 그리고,
왜인지 울고 싶어졌다.
그날 이후로 돗포와 히후미의 관계는 표면적으로는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었다. 히후미는 까불거렸고 돗포는 그에 휘말렸다. 하지만,
“자네들….”
근원적으로 삐걱거리고 있었다.
진구지가 그들 사이에 감도는 미묘한 기류를 눈치채고 뭔가를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눈치 빠르고 예민한 남자이니 자신이 말을 보탠다 하여 호전되고 악화될 상황이 아니라는 것쯤은 금세 파악한 모양이다. 히프마이 배틀이 머지 않은 시점에 이와 같은 균열은 좋지 않는 것이나 어디서 어떻게 손을 대어야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인지 히후미는 알 수 없었다.
아니, [원래대로]는 이미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어디서부터 어그러지기 시작했던 걸까.
고민하던 히후미가 내린 결론은 두 달쯤 전에, 저가 했던 말이 시작이었다 판단했다.
“너라면 내 동정 뗄 수 있을까?”
그 날도 직업 이외의 일로 여성과 접촉하는 것에 실패하여 풀이 죽어 있었다. 이대로라면 결혼은커녕 애인도 만들지 못할 것만 같았다. 히후미 성격에 원나잇은 무리니 –히후미를 모르는 이들은 그가 뻔질나게 원나잇 하고 다니는 줄 안다마는- 이대로면 평생 동정일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불현듯 엄습했다. 동정으로 30년을 살면 마법사가 된다던데 29살인 자신이 마법을 쓰기까지 앞으로 1년밖에 남지 않았다. 아니, 마법사로 끝나면 다행이지. 현자까지 바라보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 생각하니 갑작스레 불안해진 나머지 불쑥 뱉어버린 말이었다.
“뭐?”
자주 가는 만화 까페의 한쪽 방에서 소파에 앉아 서로의 소파에 발을 올려둔, 몹시도 러프한 자세로 쉬고 있던 참에 히후미가 던진 질문은 그야말로 날벼락과도 같이 뜬금이 없었다.
커다래진 맑은 하늘색 눈동자가 진심으로 놀라는 게 보여 히후미가 쿡쿡거리며 웃었다.
“이 나이 되도록 여자 손도 제대로 못 잡는데 앞으로 잡을 거란 보장도 못하잖아.”
손도 못 잡는데 무슨 잠자리를 하겠냐는 히후미의 목소리가 씁쓸하다. 평상시 가벼운 태도라 돗포도 깜박하곤 하지만 히후미는 본인의 체질 –이라고 해야 하나?- 을 상당히 신경 쓰고 있었고, 그에 관련해서 만큼은 돗포 뺨치게 부정적인 사고로 달리기 쉬웠다.
“히후미….”
“그렇다고 남자한테 동하는 것도 아니고…, 근데 너는 가능할 거 같거든.”
아, 물론 네가 남자가 아니라는 건 아냐. 그건 중학교 그때 이후로 손톱만큼도 생각하고 있지 않아.
“그냥 왜인지 너라면 가능할 것도 같아서 말이야.”
“…….”
히후미가 그러한 생각까지 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는 듯 난처한 듯, 안타까운 듯, 복잡기묘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돗포를 보니 어쩐지 조금 마음이 편해졌다. 그래서 어두운 기분을 털어버리고 밝은 어조로 화제를 돌리려고 하는데 돗포가 울상이나 다름 없는 얼굴로, 입술까지 바르르 떨어가며 목 메인 말을 뱉기 시작했다.
“나는 음침하고 어둡고 소심하고 발에 채이는 돌부리보다 못한 녀석일지 모르지만, 그래도 자존심이란 게 있어.”
“엣..”
“직업도 아닌데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누군가의 대용으로 하룻밤을 보내는 일은 못해.”
아니, 그런 의도로 한 말이 아니야.
변명해야 했지만 당장이라도 쏟아질 듯 그렁그렁한 눈을 보니 말문이 콱 막혔다. 돗포와 안 지는 제법 오래 됐지만 소심하고 비관적인 성격이긴 해도 나약하진 않은 녀석이었다. 타인 앞에 쉽사리 눈물을 보이는 녀석이 아니었다. 히후미가 알기로 돗포가 운 건 딱 네 번이었고, 히후미가 본 건 단 한 번이었다. 그런 녀석의 눈물을 –비록 참고 있는 거긴 해도- 보게 되었으니 그가 놀라 허둥거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어, 미안..”
“네가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알았어.”
“아니, 그게 아니라….”
서둘러 수습하고자 머리를 쥐어짜고 있는데 그보다 앞서 돗포가 만화책을 덮고 빠르게 일어났다.
“미안하지만 오늘은 먼저 간다.”
“어, 야! 돗포!!”
“담에 보자.”
그리곤 히후미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방에서 나가버렸다. 당혹감 속에 어찌할 바를 모른 채 히후미는 덩그마니 남겨지고 말았다.
분명 이때부터였다.
돗포의 언행이 묘하게 들쭉날쭉했던 것은.
지금 생각하면 그때 자신의 말이 돗포에게 상당히 상처였다 짐작된다. 그야 좋아하는 사람한테 그런 식의 말을 들었으니 그럴 법도 하지. 히후미는 전혀 그런 –돗포가 저에 대해 그리 생각하고 있는- 줄 몰랐지만. 몰랐다고 끝날 문제가 아닌 것이다.
“젠장, 머리에서 김 날 거 같아.”
발단을 알았지만 해결책은 없었다. 아니, 이런 문제에 답이 있는 건가?
마른 세수를 하고 턱을 괴었다. 나는 어쩌고 싶은 걸까.
“진구지 선생님한테…, 상담해 볼까.”
선생님이라면 현명한 대답을 주실까.
이런 종류의 문제는 제아무리 진구지라 해도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닐 테지만 옴쭉달싹 할 수 없는 지금 심경으로는 대나무 숲이 필요했다.
히후미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호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익숙한 번호를 눌렀다. 몇 번 신호음이 가기 전에 연결이 되었다.
[히후미 군?]
“선생님, 얘기 좀…들어주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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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공으로 드리려고 했던 글인데 노선 변경하면서 뒤로 밀린..
묻히긴 아까워서 찔끔찔끔 쓰고 있습니다 ㅎㅎ